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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1일 일왕배 결승에서 박지성(왼쪽)과 야나기사와 아쓰시가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 교토신문 홈페이지 캡처 |
[스포츠서울닷컴|김동현 인턴기자] '산소탱크' 박지성(33)의 은퇴에 그의 첫 프로팀인 교토 상가의 동료들, 서포터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일본 교토 최대 일간지인 교토신문은 14일 은퇴를 선언한 박지성을 '2003년 1월 1일, 클럽 사상 첫 일왕배 우승을 시작으로, 교토 상가에 큰 재산을 안긴 영웅'으로 표현하며 교토에서 함께 한 동료들의 인터뷰를 실었다.
교토에서 동고동락한 뒤, 유럽에도 함께 진출한 '절친' 마쓰이 다이스케(34·주빌로 이와타)는 "함께 했던 동료가 은퇴하는 것이 슬프다. 무릎 부상을 안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면서 "현역에서 그의 몫까지 해나가고 싶다"고 박지성의 은퇴를 아쉬워했다.
2001시즌 팀 내 최다인 40경기를 소화하며 4골을 뽑아낸 노구치 히로시(42) 교토 상가 강화부장도 "박지성과 생일이 같아 운명을 느꼈다"고 웃으면서 "그라운드 안팎에서 친하게 지냈다.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고 박지성과 함께 한 날을 회고했다. 그는 또 "(박지성은) 항상 겸허했다. 세계적인 선수가 되서도 자만하지 않았다"며 박지성의 프로다운 자세를 칭찬했다.
함께 일왕배 우승컵을 들어 올린 데지마 가즈키(34) 교토 상가 18세 이하 유소년 팀 코치도 "팀을 위해서 땀을 흘리고, 싸우는 선수였다. 일왕배 결승 동점을 터뜨린 헤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박지성과 일궈낸 일왕배 우승을 최고의 기억으로 꼽았다.
교토 상가 서포터 연합회 요시다 고키(43) 단장은 "나이가 아직 젊은데 은퇴라니 아쉽다. 마지막 무대는 교토에서 뛰어주길 바랐다"면서 "니시쿄고쿠 경기장(교토 상가의 홈 경기장)에서 은퇴 경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지성은 지난 2000년, 명지대를 휴학하고 일본 J리그 교토 퍼플 상가(현 교토 상가)로 이적했다. 팀이 2부로 강등된 후에도 잔류해 1부 승격을 주도했다. 그는 2002년 12월 31일자로 계약이 종료됐음에도 불구하고 2003년 1월 1일 도쿄 요요기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가시마 앤틀러스와 일왕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후반 5분 동점 골을 터뜨리는 활약으로 2-1 역전승을 이끌었다. 이때 따낸 우승컵은 지금도 교토 상가의 처음이자 마지막 타이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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